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자얀타 전차 (문단 편집) == 실전 == 도입 직후인 1965년에 일어난 [[제2차 인도-파키스탄 전쟁]]에 투입될 기회가 있었으나, 인도 군부는 최신예 전차이자 아직 상대적으로 소량 밖에 확보를 못한 해당 전차를 [[카슈미르]]나 [[방글라데시]]에 투입하기보다는 혹시라도 있을 사태에 대비해 수도인 [[뉴델리]]에 배치해놓는 쪽을 선호했다. 일부 전차가 실전에 투입되기는 했으나 제한적이었으며, 이후 연이은 전투에서 [[센추리온 전차]], [[M4 셔먼]] 등 기존 장비들만으로 [[파키스탄군]]을 제압하는데 성공하며, 비쟈얀타 전차가 크게 활약할 일은 없었다. 이후 [[이슬람]] 신자들을 비롯한 소수 종교 신자들과의 분쟁이나 [[마오주의]] 반군들과의 내전에도 투입되어 활약했다. 그리고 1971년에 있었던 [[방글라데시 독립전쟁]]말에 일어난 [[제3차 인도-파키스탄 전쟁]]에 [[센추리온 전차]]들과 함께 투입되어 활약하였다. 1984년에는 [[시크교]]도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극심해지며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 세력이 무장 정파가 되어 인도군과의 전투를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. 이후 인도군은 시크교도들의 중심지이자 분리주의 운동 세력이 점거하여 사령부로 사용하고 있던 [[암리차르 황금사원]]을 점령하는 블루 스타 작전에 7대의 전차를 투입하였다. 인도군은 황금사원 진입 초기부터 해당 전차를 진입군에 화력 지원용도로 배치하여,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요새화까지 된 남쪽 정문에서, 적군을 제압하고 정문을 파괴하여 통로를 개척하는데 활용하였다. 사원 영내 진입 이후에는 [[APC]]를 비롯한 경기갑 차량들이 선두에 섰으나 [[RPG-7]]과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시크교도 운동군에게 피해를 입고 퇴각해야 했다.[* 이렇게 시크교도들이 중무장하여 인도군과 맞설 수 있던 배경에는 이들이 영국 식민통치기부터 적극적으로 경찰과 군대의 말단부터 중역에까지 두루 중용되어 온 이들이었다는 점과, 인도 내부의 혼란을 야기하고자 했던 파키스탄과 중국이 이들을 지원했다는 점이 있다.] 이에 인도군은 행렬 후미에 있던 이 전차를 투입하여 시크교도 운동군의 저항을 분쇄하는데 성공하였고, [[HESH]]탄을 발사하며 황금사원의 본관 건물에서 저항하던 적군을 제압하고 특수부대의 진입로를 개척하였다. 이후 이 진입로를 따라 특수부대가 진입하여 내부의 저항군 인원들을 제압하며 해당 작전은 종료됐다. 이 작전에서 비쟈얀타는 요새화된 시설 및 시가지를 장악한 게릴라 진압 작전에서 전차가 매우 효율적인 병기임을 증명했으며, 동시에 많은 시크교도 민간인들을 살상하는데 사용된 병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고, 동시에 인도 내 시크교도 억압 정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.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전술했듯 2008년에 기갑부대에서는 전량 퇴역했으나, 아직 지상군 전력에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을 절감한 인도군은 105mm 직사화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차량을 방치하지 않고 카슈미르를 비롯한 국경 분쟁지대들에 고정포대로 배치해놨다고 한다. 이후 [[2019년 인도-파키스탄 분쟁]]에 동원되어 해당 사실이 알려졌다. 거기에 이걸로도 모자랐는지 [[130mm M-46 평사포]]를 장착한 M-46 캐터펄트라는 물건을 만들어냈으며 '''아준 초기형으로도 그짓을 벌이고 있다.(...)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